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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내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길라잡이, 포구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02 조회수 : 106
▲ 1966년 서해안 어촌풍경
[충남도정신문 기획칼럼] 내포포구 이야기
내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길라잡이, 포구
내포, 충청도서 살기 좋은 곳
산과 바다 연결하는 포구
포구 통해 불교·천주교 확산
내포지역 경제활동도 촉진
내포(內浦)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 들어간 부분’을 말한다. 충청남도 내포의 지형은 해안선이 매우 불규칙하고, 만조시에는 바닷물이 삽교천과 안성천 등의 하구에 이르러 넓은 바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육지 깊숙이 들어온 천은 비산비야(非山非野)라는 평평한 지대와 만났다.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내포는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으로 손꼽혔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내포를 언급할 때 중요하게 언급하는 산과 바다이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포구(浦) 혹은 나루(津)이다. 가야산, 오서산, 대해 등과 함께 유궁진(由宮津)이라는 포구나루를 특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내포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포구와 나루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실 내포 불교와 천주교가 유명한 이유는 외국문물이 서해를 통해 전래되었고, 포구와 나루를 통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내포보부상 역시 바다에서 생산된 어물과 평야지역에서 산출된 농산물을 포구와 나루 등지에서 유통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아산만과 안성천이 경기 남부지역과의 육로 교통을 위축시켰지만, 삽교천, 곡교천, 대호지, 가로림만, 천수만 등에 위치한 포구와 나루터는 내포민의 수상 및 해상활동을 촉진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즉, 내포지역의 사회경제적 활동은 육로를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지향하여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 중심에 포구가 있었다.
내포의 포구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다. 19세기 서세동점의 시기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묘를 도굴하려고 했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예산 구만포로 출입했고, 한말 개화파인 윤치호와 4대 대통령 윤보선 등을 배출한 해평윤씨의 거주지는 아산 둔포였다.
또한 내포보부상의 핵심 근거지인 홍성의 광천 옹암포, 충청도 세곡운송의 요충지인 아산 공세곶포, 영신제라는 민속문화를 품고 있는 서산 창리, 아산만의 가장 큰 포구였던 한진 포구, 조선시대 충청도 수군사령부가 있었던 오천항 등도 내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구였다. 포구는 내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주제이다.